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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그때

@pencilonpaper.kr

 

시는 나아가려 할 때만 들이치는 게 아니어서
멀거나 멈출 때
흘린 것을 감아올릴 때
그것을 움푹한 처소에 담아둘 때
그때    

- 이병률 

 

 

그러고 보니 오랜 시간 동안 전시로 보여지지 않는 그림과 글 그리고 음악이 쌓여 갔다.

전시에서 보여지는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의 행위들이 고스란히 스민 흔적들이 '그때가 아닌 것 같아서', 혹은 '조금 더 익혀보자'라는 생각에 십 년이 흐르고 십오 년을 넘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쌓아온 시간들이 지금의 삶과 작업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pencilonpaper.kr 에서는 그동안 전시되지 않았던 그림들 위주로 그림과 관련된 사람, 책, 음악, 장소에 대한 기억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관심있는 예술가에 대한 기록을 찾을 때면 늘 목마른 지점이, 공식적인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외에 작가의 목소리와 문체로 보고 싶은 그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특징이 고요함을 추구했던 삶의 방식과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이 살았던 고요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되 누군가 기록에 대한 목마름에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전시를 하거나 공모 지원을 할 때면 제한된 글자 수에 늘 버거웠던 기억과 여전히 버거워하는,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늘 떠나지 않고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모습. 

어쩌면 이런 나의 부족한 모습에 대한 보충이 이뤄지는 공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