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us sommes deux soeurs jumelles
누썸드 쐬~~흐 쥐멜 (우리는 쌍둥이 자매)
Nées sous le signe des gémeaux
네쑤르 씨뉴 데 줴모 (쌍둥이 별자리에서 태어났지)
mi fa sol la mi ré ré mi fa sol sol sol ré do
미파솔 라~~ 미레 레미파 솔솔솔 레도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는데, 수업 시간 대부분은 자크 드미(Jacques Demy)(1931-1990)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프랑스어 시간에 배운 단어와 문법은 잊어도 되니까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1964) 그리고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1967)은 꼭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영화에 관심 없거나 잠이 부족한 친구들은 불 꺼진 교실이 좋은 숙면의 장소가 되었고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공교육의 딱딱함 속에서 긴장을 풀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그 시간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교실 앞과 뒤로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 관심 있는 음악가의 연주회에 가기 위해 계획을 세워 돈을 모으고 표를 사서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유서를 쓰고 당당히 그 티켓을 함께 내밀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리액션을 주고받으며 영화를 보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리액션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더해져 그 시간의 분위기가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다.
졸업할 때, 처음 선생님께서 당부하셨던 말씀처럼 그 시간에 배운 문법과 단어들은 사라지고 '자크 드미', '쉘브르의 우산' 그리고 '로슈포르의 숙녀들'만 기억 속에 남았다.
쥘 베른(Jules Verne)(1828-1905)의 소설 《해저 2만리》에는 '지중해에서 보낸 48시간'이라는 일곱 번째 챕터가 있는데 문득 그 챕터 속에 나를 던져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공간과 시간에 나를 떨어트려 놓을 때, 마치 안개 속에 서 있어 발을 헛디딜 것 같지만 발끝의 감각을 더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엔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그 만남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동물 혹은 자연 또는 사물 등 다양한 범주를 오고 간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돌아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극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즐기라고 말해준다. 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곡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다카포(D.C), 세뇨라는 특정 구간으로 돌아가는 달세뇨(D.S), 특정 부분을(Coda) 건너뛰고 반복하기 위해 돌아가는 달세뇨 알 코다(D.S. al Coda).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고 016으로 시작하던 핸드폰도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소설 속 지중해 섬에 도착해서 두 달 후쯤 카드를 사서 친구에게 생존신고와 같은 안부 전화를 하고 엽서에 바다 풍경을 그려서 보냈다. 처음 전한 인사는
"나는 지금 일곱 번째 챕터 속에 있어."
여전히 종종 책을 읽다가 기억 속에 남겨진 지명 혹은 그때의 분위기가 떠오르는 곳이 있으면 리서치를 위해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오거나 특정 구간을 오고 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행동은 작업 속에 고스란히 스민다.
장기 휴학을 마치고 복학할 때 선생님들이 웃으시면서 "군대는 잘 다녀왔니?"라는 농담 섞인 안부와 함께 정말 군대 다녀온 동기들과 함께 복학하게 되었다. 학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대 3년이라는 시간을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소설 속 섬으로 떠났던 시간들은 아직까지 삶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곳에서 온 몸으로 받아들였던 빛과 색 그리고 음악은 조금씩-점점-깊게 작업 속에 스며들고 있다.
소설 속 지중해 섬에 머물면서 이탈리아, 체코, 독일, 벨지움, 영국, 프랑스를 다니며 서점과 레코드 가게 그리고 크고 작은 연주회를 찾아다니다가 브뤼셀의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기억 속에 진하게 남겨진 '자크 드미'라는 이름 그리고 더불어 그의 아내였던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1928-2019)의 다큐멘터리 《벽, 벽들 (Mur Murs)》(1980)도 마주하게 되었다.
우연히 마주친 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는 한국에 돌아와 벽에 남겨진 곰팡이와 못 자국 등 흔적을 따라 드로잉으로 남긴 작업에 영향을 주었고 <저만치 벽 (A Remotely Standing Wall)> 연작의 시작이 되었다. 야외에서 작업했던 벽화 중 일부는 아직까지 비와 바람에 의해 또 다른 흔적을 덧입고 남겨져있다.
극장에서 다시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를 만난 것은 2005년, 2009년, 2015년 그리고 2019년이었는데 특히 2009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네바캉스 서울'이 개최되어 그 해 여름 한 달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시간을 나누고 쪼개서 그곳을 드나들며 감격과 설렘을 재회하고 있었다. 동일한 대상을 마르고 닳도록 보고 들어도 매 순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영화에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베르나르도 역할을 맡았던 조지 차키리스(George Chakiris) 배우와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1952) 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진 켈리(Gene Kelly)도 등장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1961),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1967), 《라 라 랜드 (La La Land)》(2016) 세 편을 순차적으로 본다면 중복되는 등장인물들과 감독들의 오마주를 엿볼 수 있다.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1964)을 뛰어넘는 '조형적 영화(Formative Movie)'는 존재하지 않는다.
- Damien Chazelle -
영화에서 변주되는 멜로디가 있는데 작곡가 지망생인 솔랑쥬가 악상이 떠올랐다며 연주하는 곡으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작곡가 앤드류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악보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다. 떨어진 악보를 보게 된 앤드류(진 켈리)가 부르는 도입부,
sol la fa sol si la la sol sol la fa sol la mi sol fa mi fa do fa
솔라파솔 시라 라 솔 솔라파솔 라미 솔 파 미 파 도 파
도입부로 시작된 멜로디 그리고 뜻밖의 만남은 마지막 장면에 다다를 때 피날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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